목록잡설 (185)
<복덕방>

"거 씨발 정치적 판단으로 움직이지 말고 과학적으로 판단합시다!" 이런 말을 봤다. 특히 이 시국에 좋은 말이다. 그래서 한번 씨부려본다. 대체 그럼 씨발 과학적 판단이 몬데? 과학적 판단이란 과학적 사고를 거쳐 내린 결정을 말한다. 아니 그래서 씨부랄 과학적 사고는 뭐냐고? 그건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고 여러 층위를 통해서 설명해야 하니까 존나게 간단하고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학적 사고의 기본 원리만 짚어준다. 이 이야길 내가 리처드 도킨스 책에서 봤던가..... 아마 그랬던 거 같은데, 대충 내용은 이렇다. 한 과학자, 교수가 자신의 이론을 강연하던 도중 학생 하나가 이론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 검토를 거친 과학자가 말하길 "어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렇게 수정하자." 이런 식이었단다. 바로 이게 ..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렇고 너무도 뚜렷한 인지부조화에 시달리는 사람 혹은 집단이 있다. 그들이 공유하는 가장 큰 특징은 시야가 좁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고가 단편적이며 획일적이다. 그것이 나중에는 특정사안이 아닌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가치관이 된다. 즉 병신똘추가 된다는 것이다. ex. 사이비종교 광신자 그렇다면 인지부조화는 어떤 과정을 통해 시야를 좁히고 사람을 병신 만들까? 아주 쉽게 이해 가능한 극단비유를 통해 알아보자.1. 철수는 A가 존나 퍼펙트한 인간이라 믿어서 하루에 열 번이라도 A의 좆을 빨 수 있다고 조금씩 믿기 시작한다.2. 그 믿음이 그와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집단에 의해 강화된다.3. A가 사실은 개좆같은사이코패스에개씨발롬씹쌔개새라는 게 밝혀진다.4. 철수는 자신의 믿음이 틀렸..

진짜 왜 뒤늦게 떴는지가 불가사의라 할 정도로 대단한 명곡을 다수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의 밴드인 잔나비. 이거 솔직히 '뜨거운 여름 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딱 한 곡만으로도 반박불가라고 본다.그런 잔나비의 인기와 그 저력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현재 공중파에서는 자취를 감춰버렸다. 심지어 나혼산에서는 보컬 최정훈을 통편집하기도 했다. 그를 다 찍어놓고 마치 없는 사람인냥 스치는 옆모습만 가끔 나왔을 뿐. 이 정도면 최정훈이 무슨 살인이라도 저지른 사람 같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의 근원이 그의 멤버들 중 하나가 과거 학폭을 했었다는 '사실' 하나와 최정훈 본인도 아닌 아버지에 관한 '루머' 이 두 가지가 전부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실을 놓고 보자면 잔나비의 다른 멤버는 학폭은 물론 보컬 역시 아버지..

창작자(예술가)는 자신의 창작품 안에서 상상력을 '무한'하게 확장할 자유가 있으며 그것은 그가 창작자로서 지니는 자명한 권한이다. 창작, 예술을 소비하는 대중의 권한은 그러한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화의 자유주의적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로도 한 집단의 예술과 문화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것이 잘만 이루어지면 어떤 집단이 형성하는 문화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는 가장 커다란 척도인 다양성이 확보될 수 있다. 사실상 대중문화, 예술작품이든 뭐든 다양성이 그 시작과 끝이다. 다양성이란 다름 아닌 많은 취향의 반영을 의미하고, 그 취향이 바로 니체가 말했듯 '모든 것'이니까. 그릇된 저질의 집단은 당연히 창작자에게 이런저런 잣대를 들이대고 창작의 자유를 속박한다. 예를들어 ..

일단 나는 이게 소설 및 게임 원작인 것도 모르는 상태로 봤다는 점 밝혀둔다. 시즌1 정주행 완료했다. 결론부터 말한다. 개인적인 취향 고려하고 사전 세계관 지식 제로인 나의 감상평은? 씨부랄 개꿀잼스!!!! 시즌2 존나 언제 기다림?! 이야기 전개 자체가 존나 불친절했던 건 사실이었다. 일단 사건의 흐름 자체가 시간 순서대로 구성되어있지 않다. 크게 본 전체 줄거리는 시간의 역순으로 굴러간다. 제일 첫 편에 벌린 이야기가 왜 벌어졌는가? 를 향해 마지막 편까지 달려가는 식이다. 그리고 각 캐릭터의 이야기 또한 시간이 각기 따로 흐른다. 마지막에 가서야 그것이 봉합된다. 이렇게 써두고 보니 씨발 존나 복잡하네! 안 봐! 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걸 상쇄할 만큼 충분한 극적 재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죽음' 그것도 어떤 의미와 관점에서의 '억울한 죽음', '안타까운 죽음'을 앞에 둔 정상인의 정상적 반응은 당연히 추모 그리고 겸허이다. 감히 그러한 죽음을 앞에 두고 망발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상의 정의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의는 판단력이 부족할지언정 그러한 정상성을 바탕에 두고 있다. 따라서 '죽음'은 민의를, 우리의 사고를 겸허하게 만든다. 그리고 겸허한 사고는 때로 올바른 주장을 약화시킨다. 두 개의 주장이 있다. 하나는 '죽음'을 빌미로 한 논리가 빈약한 주장이며, 또 하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한 논리가 완전한 주장이다. 대한민국의 민의는 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게 되어 있다. 나중에라도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것은 그때 수정하면 되니까 우선 겸허한 자세로 수용하는 것이..

인문학이란 뭐냐? 사전적 정의를 보면 인간의 사상 및 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영역이란다. 자연과학과 배치되는 개념이란다. 그렇다면 뭐겠냐? 철학, 경제학, 예술, 법률, 역사 등등 하여간 별의별 잡다한 지식과 통찰에 관한 글을 말한다. 사실 밑에 쓴 소설, 즉 넓게 보면 문학도 여기 포함인데 우리가 통상 인문학 서적이라고 씨부리면서 읽는 책이 뭔지는 다들 잘 알 테니까 그냥 제외했다. 자 그럼 본론 정신 똑바로 박힌 새끼의 인문학 서적 선택은 어째야 할까? 이건 뭐 씨발 길게 쓸 것도 없다. 그 분야의 정통한 전문가, 연구자의 책을 보면 된다. 끝이다. 야 씨발 이건 내가 쓰면서도 존나 좀 병신같긴 하다.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존나 당연한 소리가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면..

본질적으로 소설은 알다시피 이야기다. 스토리다. 그러한 관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은 이렇다. 그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 그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며 그것이 또한 합당한 소설이다. 캐릭터, 배경, 대사, 묘사, 문체 등등등 소설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이야기의 도구로서 쓰여야 한다는 거다. 생생한 캐릭터, 절절한 배경 묘사, 예쁘고 보기 좋은 문장, 놀라운 인문학적 지식, 뛰어난 세태반영 풍자, 깊이 있는 철학이든 뭐든 간에 그것이 이야기와 동떨어져 있다면, 그와 관계없이 쓰인다면 그 소설은 기본조차 갖추어지지 않은, 작가의 허영심만을 드러낸, 최악의 경우 쓰레기가 된다. 내가 미문주의니 뭐니 하는 걸 개극혐하는 이유가 이거다. 씨발 갑자기 혈압오르네. 이야기랑은 좆도 관계 없는 예쁘고 그럴싸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