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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덕방>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자 철학서 중 하나다. 일단 재미와 18세기식 해학이 넘치니 다들 읽어보시길. 한마디로 걍 18세기 이말년, 개그소설임 ㅋㅋ 게임도 유튜브도 없던 시기니까 개꿀잼이었을듯. 이 대목도 같은 맥락에서 명문으로 선정했다. ‘퀴네공드의 다정한 연인 깡디드는 아름다운 그녀의 피부가 그을고, 눈이 충혈되고, 가슴이 축 늘어지고, 볼이 쥬름지고, 두 팔이 빨갛게 튼 모습에 놀라 세 걸음 뒤로 물러섰다가 예의상 곧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깡디드란 소설의 내용 자체가 깡디드가 사랑하는 퀴네공드를 찾아가는 모험이다. 근데 온갖 역경과 고난을 뚫고 막상 맞닥뜨린 그녀...가 저랬다는 거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남.ㅋㅋㅋ 세상 일이 다 저렇다.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던 끝에 꿈꾸던 무언가가 자리하고 ..
지금까지 단 한 사람의 초인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가장 위대한 인간과 가장 초라한 인간, 그 둘의 벗은 몸을 보았다. 그들은 아직까지 너무도 닮았다. 블로그질도 복싱덕질도 못하고 있지만 , 독서는 멈추지 말자는 의미에서 오늘의 명문 카테고리는 계속 쌓으려고 한다. 요즘 머리가 텅 빈 것 같아서 간지나게 니체부터 좀 읽어보다가 올린다. 여러모로 좋은 문장이다. 동굴인과 현대인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은유로도 적절하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좋은 이유는 처음부터 안 읽고 걍 아무데나 펼쳐서 읽어도 노상관이기 때문이다. 추천드립니다.
진짜 간만인데, 짧고 굵게 간다. "자유는 임계점에 도달했다. 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자유는 자체의 활력이 지닌 논리에 떠밀려 정반대로 바뀔 위험이 있다."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지만,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 자유가 임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저 말의 의미는 뭐냐면, 공산주의, 전체주의할 자유도 자유라는 거다. 자유의 활력이란 게 그런 거다. 우리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며 결정하고 있다고 믿는 동시에 잠재적 악질 싸이코패스 독재자에게 표를 던지는 심리랄까? 정신차려 이 개새끼들아.

한번 다시 읽어보려고 폼 잡고 펼쳤지만, 진도 거의 못 나가고 있다. 그래도 역시나 생각해볼 만한 문장이 있어서 하나 발췌해본다. 동물, 훈련에 관하여."동물은 현재의 인상으로 규정된다. 현재의 강압에 대한 공포에 의해서만 동물의 욕망은 제어되고, 결국 그 공포가 습관이 되며, 그 습관으로 동물을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훈련이다." 코로나 시국, 나는 가끔 자신이 인간이 아니라 쇼펜하우어가 언급한 훈련 받는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공포, 그러한 공포를 근간으로 한 자의 혹은 타의(국가)에 의한 욕망의 속박, 그것의 정당화 및 '습관'화, 훈련의 진행.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나는 가끔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미국이나 유럽의 코로나 규제 반대시위가 ..
요즘 일한답시고 머리가 많이 나빠진 것 같아서 뇌세포좀 깨우게 다시 좀 읽고 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적어도 이 책은 다른 중언부언하면서 말장난하고 자기만 아는 단어 나열하는 철학서들보다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다. 읽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해주고 싶은데, 또 막상 권해주자면 망설여진다. 사정이 좀 낫다 뿐이지 이걸 재미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목적 자체가 좀 다른 책이니까 생각 있는 사람은 함 읽어 보길 추천한다.난 평소 사고방식이나 나름 삶의 철학에 있어 쇼펜하우어, 특히 이 책에서 꽤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딱히 쇼펜하우어나 이 책을 물고 빠는 건 아니고(대깨쇼 아님), 현대인에게도 충분한 인사이트가 있다는 거다. 하긴 뭐 똘스또이는 "그가 우리를 철학이 ..
최근 즐겨보는 에리히 프롬의 대표 저서에서 오늘의 명문 하나 따왔다. 개인적으로 이분의 구체적인 실물경제 등에 관한 아이디어는 딱히 수긍하지 않지만(특히 끝부분은 개실망) '인간적 철학적' 면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본다. 이 '소유냐 존재냐'도 성숙한 성인이 본다면 분명 무릎을 탁! 칠 만한 내용이 존나게 많다. 일독을 권한다. 사색에도 존나게 좋다. 일단 책 내용을 모조리 함축한 제목 부터가 그렇다. 저 제목 만으로도 하루죙일 사색이 가능하다. 소유할 것이냐, 존재할 것이냐. 캬오. 아무튼 궁금하면 읽어봐라. 오늘 따온 문장은 역시나 존나게 까고 싶은 새끼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개명문장이다. 바로 간다. "무릇 모든 광신적 태도는 다른 충동, 흔히 그것과는 정반대의 충동을 감추려는 태도라는 의심을 낳는다..
하이예크 노예의 길과 함께 요즘 반드시 읽고 곱씹으면 딱! 좋은 에리히 프롬의 명저 에서 한 문장 가져왔다. 딱히 훈장질하는 내용은 아니고 요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자 반성이랄까? 에리히 프롬이 분석한 중세의 자유에 관한 내용 중 일부다. "중세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지 않았다. 그때는 '개인'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씨발! 존나 너무느무느무 대단한 초대박 명문이라 읽는 순간 요즘 잘 도는 시쳇말로 멍-해지지 않냐?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랄까? 이 두 문장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자유를 쟁취하거나 지키려면 그 전에 자유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자유의 전제조건은 바로 개체화 즉 개인화다. 아니, 개인은 그냥 개별적 존재가 개인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