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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소설] 카넬로의 악몽

TripleGGG 2018. 4. 10. 17:11

내 멋대로 쓰는 복싱소설 


1. 카넬로의 악몽


카넬로는 무언가에 놀라기라도 한 듯 번쩍 눈을 떴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시트도 흠뻑 젖어있었다.

"꿈이었구나......."

카넬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joder(씨발)........."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그날이 고작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오자 잠시 멈추었던 악몽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카넬로는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갔다. 늘 즐겨 마시는 멕시코산 우유를 한잔 마셨다. 그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을 확인했다. 트레이너이자 친구 쩨포였다.

카넬로는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

"올라. 쨈프."

"올라. 쩨포"

안으로 들어온 쩨포는 카넬로와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여태 잔거야?"

"응."

"무슨 일로 왔는지는 알지?"

"무슨 일인데."

"잊고 있었구나? 오늘 찡코가 오는 날이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

"지난 주에 말했잖아."

"그래."

"휴일인데 그냥 쉴 걸 그랬나?"

"아니야."

쩨포는 카넬로의 얼굴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

"헤이 카넬로. 안색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어?"

"별 거 아니야."

"컨디션 관리 잘 되고 있는 거지?"

"물론이지. 완벽해."

"좋아. 내가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

그때 누군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쩨포가 희죽 웃었다.

"왔다. 찡코야."

카넬로가 일어서서 직접 문을 열어주었다. 대머리에 키가 작달만한 사내 하나가 유난히 툭 불거진 눈알을 굴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오른손에 작은 쇼핑백 하나를 들고 있었다.

"요 쨈프. 잘 지냈나."

"덕분에."

"그래."

카넬로가 찡코를 소파로 안내했다. 쩨포가 찡코와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셋이 소파에 모여 앉았다. 찡코가 쇼핑백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다들 바쁜 사람들이잖아."

카넬로와 쩨포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찡코가 쇼핑백 안에 손을 집어넣어 작은 종이박스를 하나 꺼내놓더니 말을 이었다.

"짜잔, 이게 바로 이번에 새롭게 믹스한 샘플이야."

찡코의 말에 쩨포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새로 믹스했다니? 원래 쓰던 게 아니란 거야?"

찡코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검증이 다 끝난 상품이야. 우리가 하루 이틀 아는 사인가? 내 실력 알잖아? 쓸 데 없는 걱정은 말라고."

쩨포가 고갤 끄덕였다.

"효과는?"

"클렌부테롤 함량이 좀 더 올라갔어. 체지방이 활활 타서 쌓일 틈이 없다고. 일단 써보면 알 거야."

듣고만 있던 카넬로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복용은 전처럼 하면 되나?"

"그래. 식후에 한 알씩만. 단, 주의할 점은 알지? 너무 욕심내지마. 그 이상 먹으면 소변에 성분이 검출될 수도 있어."

카넬로가 심각한 표정으로 약상자를 바라봤다. 찡코는 상자를 집어 다시 쇼핑백 안에 집어넣었다.

"1개월 치야. 가격은 같고, 입금방식도 같아. 그럼 이제 다 됐지?"

찡코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넬로와 쩨포도 뒤를 따라 일어났다. 쩨포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찡코가 손을 맞잡자 쩨포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이번 2차전은 반드시 이겨야 해. 알지?"

찡코가 씩 웃었다.

"약효는 확실해."

쩨포가 손을 놔주었다. 찡코가 카넬로에게 손을 흔들었다. 카넬로는 고개를 까딱하며 인사를 받았다. 찡코가 휘적휘적 빠른 걸음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찡코가 가자 쩨포가 말했다.

"들었지? 용법 확실히 지키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쨈프."

"그래."

"그럼 나도 이만 가볼게. Vamos(힘내)! 쨈프!"

쩨포가 카넬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그렇게 쩨포도 가고 홀로 남은 카넬로는 잠시 그대로 서서 테이블 위의 쇼핑백을 바라보았다. 

이날 밤, 카넬로는 또다시 예의 악몽을 꾸었다.

꿈은 너무도 생생했다. 

카넬로는 링 위에 있었다. 익숙하다. 편하다. 링은 카넬로의 터전이자 어머니의 품과도 같다. 카넬로는 링 위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위대하다. 링 위의 카넬로는 강하다. 어릴 적부터 그래왔다. 

헌데 뭔가 이상하다. 카넬로의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다. 무언가에 떨고 있다. 두려워하고 있다. 쫓기고 있다. 다름 아닌 링 위에 함께 오른 상대다. 

........GGG?

골로프킨의 주먹이 날아든다. 카넬로는 얼른 뒤로 물러난다. 주먹이 코앞을 스친다. 절대로 맞아선 안 된다. 이 주먹은 안 된다. 카넬로는 뒷걸음질 친다. 링 줄에 등을 기댄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골로프킨은 꽤나 느리다.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잘 피하다 카운터를 맞추면 된다. 골로프킨이 다시 다가온다. 카넬로는 재차 물러선다. 주먹이 날아온다. 피한다. 빈틈? 카넬로는 크게 주먹을 휘두른다.

들어갔다!

분명 묵직한 느낌이 주먹으로, 손목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다음 순간, 카넬로는 똑바로 눈을 뜨고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노려보고 선 골로프킨의 모습을 본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다. 

뭔가 잘못됐다. 골로프킨의 몸집도 더 커지고 얼굴도 더 무서워졌다. 주먹이 날아온다. 다시 스친다. 이걸 맞았다간 정말이지 얼굴이, 뼈가 부서져버릴 것 같다. 

무섭다. 두렵다.

골로프킨의 이마에 뿔이 솟는다. 입이 벌어지며 뾰족한 이빨이 드러난다. 괴물이다. 야수다. 사람이 싸워 이길 수 없는 존재다. 이건 아니다. 안 된다. 카넬로는 다가오는 골로프킨을 피해 도망친다. 경기를 중지해달라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누구도 카넬로의 비명을 듣지 못한다. 골로프킨은 더욱 기괴하고 무서운 모습으로 변해 카넬로를 쫓는다. 

마침내 겁에 질린 카넬로의 눈에는 눈물마저 맺힌다.

"아악!"

카넬로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역시나 식은땀에 흠뻑 젖었고, 눈가가 촉촉했다. 카넬로는 무기력하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갔다. 찬물에 세수를 했다. 이날따라 악몽의 여운이 길었다. 카넬로는 몇 번이나 도리질을 쳤다. 

대체 언제까지 악몽이 계속 될까? 이런 상태로 싸울 수 있을까? 링 위에 오를 수나 있을까?  

그를, 골로프킨을 마주할 수 있을까?

"Mierda!(젠장)"

카넬로는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주방으로 갔다. 냉장고 문을 벌컥 열었다. 멕시코산 우유를 꺼냈다. 컵에 따랐다. 잠시 그대로 식탁 앞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홱 돌아서서 제 방으로 가더니 다시 식탁 앞으로 돌아왔다. 

유난히 꽉 쥐어진 카넬로의 왼손, 그 왼손이 펴졌다. 거기엔 조그맣고 하얀 알약 두개가 놓여 있었다. 카넬로는 또 잠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탁! 입 안에 약을 털어넣었다.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입술에 묻은 우유를 훔쳤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씩 웃었다.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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