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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간략리뷰 스포 有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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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 간략리뷰 스포 有

TripleGGG 2017. 10. 7. 02:38

별 기대하지 않고 가서 봤다. 기본적으로 나는 국내에서 제작되는 역사 관련 컨텐츠는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소위 '국뽕' 정서를 도무지 봐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이 야릇한 우월감으로 싸구려 자부심을 돋우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그것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연장선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극혐한다. 아무튼 그건 개인취향이니까 각설하고, 이런 이유로 소설, 영화 뭐든 나는 역사 관련된 건 좀 피해왔다.

덕분에 지금까지 김훈이라는 작가의 작품 또한 접하지 못했다. 그 또한 역사를 소재로 다루기 때문이었다. 허나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나는 나의 편협하기 그지없는 편견을 탓해야 했다. 

그렇다. <남한산성>은 씨발 존나게 훌륭한 영화였고, 영화는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데 힘썼다고 한다.

지금부터 개인적인 리뷰 간다. 짧게 중심내용만 간다. 스포 있다.

영화는 병자호란을 다룬다. 남한산성에 고립된 임금 인조와 척화파와 주화파의 논쟁을 다룬다. 즉 청나라랑 한 판 뜨자는 측과 화친을 맺자는 쪽의 대립인 것이다. 척화파 김상헌 역에 김윤석, 주화파 최명길 역의 이병헌이다.

우선 이 영화는 내가 극혐하는 국뽕이나 국가주의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조선'왕조'의 병신스러움을 아주 유려하지만 매우 신랄하게 까고 있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조선은 청나라와 싸워 이길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항복하겠다고 말 하고, 왕이 나가서 절을 세 번, 고개를 아홉 번 숙이면 끝나는 일을, 왕조의 권위와 명예라는 하잘 것 없는 환상 때문에 끝까지 이러쿵저러쿵 시간을 끈다. 그동안 수많은 병졸, 민초들이 고통 속에 죽어간다.

영화에서 '개인'들은 '왕'과 '종묘사직'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저 추위와 배고픔, 동상이 고통스럽고, 어서 빨리 전쟁이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왕과 벼슬아치들은 잘도 처먹고 처입어 동상이나 굶주림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한다. 잘 생각해보면, 놀랍게도 그들과 민초의 차이는 부모가 누구였느냐에 불과하다.

척화파나 주화파나 그들에게 백성은, '개인'은 없다. 그들은 논쟁을 벌이는 듯 보이나 결과적으로 '종묘사직'이라는 좆도 뭣도 아닌 환상 속 권위를 지키기 위한 동일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을 따름이다.

결국 청나라의 맛보기 공격만으로 남한산성을 초토화 되고, 결국 화친을 맺게 돼 전쟁은 일단락 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종묘사직'이 좆도 뭣도 아니라는 걸 깨달은 자는 영화 속에서 단 한 사람, 놀랍게도 결사항전을 주장한 김상헌(김윤석) 뿐이다. 그는 왕이 청나라에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끝까지 반대하는 씹꼰대로 묘사되지만, 날쇠라는 천민 대장장이와의 관계, 대신들의 병신스러움 등을 계속 겪으면서 무언가 깨닫는다. 화친이 맺어진 후, 최명길에게 던지는 대사가 그걸 증명한다.

"백성을 위한 새로운 삶의 길이란 낡은 것들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서 비로소 열리는 것이오. 그대도 나도 그리고 우리가 세운 임금까지도 말이오. 그것이 이 성 안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오."

여기에 더해 김상헌은 자결을 하기 전, 천민 날쇠에게도 큰절을 올리고, 청나라 칸에게 절을 하러간 왕을 향해서도 절을 올린다. 즉 죽음을 앞둔 그에게 날쇠나 왕이나 동급이라는 거다.

대부분 김상헌이 화친, 왕이 칸에게 고개 숙인 것이 괴로워 자살했다고 보던데,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게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조선왕조 종묘사직의 병신씨발스러움을 느꼈고,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꼰대적 삶을 부정한 것이다. 당연히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살한 것이다. 그가 자결할 때 사용한 칼은 첫 장면에서 그가 죽인 노인을 죽인 칼이다. 노인을 죽인 이유도 노인이 청나라 군대에 얼음길을 알려주겠다고 해서이다. 노인은 쌀이 필요한데 청나라는 쌀을 줄 것 같아서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죽인 거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씨발 노인 말이 맞거든. 민초, 개인은 쌀 한 되 얻어서 살아가는 게 종묘사직 지킨다고 개지랄 떨다가 뒈지는 것보다 훨씬 나은 거거든. 아무튼 이 외에도 영화는 이와 비슷한 맥락의 대사와 장면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따라서 나는 이 영화가 앞서 말했듯 국가, 전체주의와 반대편, 즉 '개인주의'를 비호하고 있는 매우 현대적이고 진정 진보적인 철학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훈의 소설 역시 거의 똑같다니 마찬가지라고 보고, 덕분에 나는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이제 차차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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